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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 각본대로?"…여론재판 오해 부를 박한철 소장의 말 본문
재판관 퇴임문제 결부 탄핵일정 못 박아…불공정 편파 재판 우려 불식해야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이 재판관 한 명 퇴임일자 문제로 대통령 탄핵심판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눈을 의심했다. 대한민국 헌법질서와 가치가 사느냐 죽느냐 문제가 달린 중차대한 사건 아닌가. 고영태 등 핵심 증인들은 아직 행방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데 재판관 한 명 퇴임일자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전까지 결론 내야 한다고 헌재 소장이 공식적으로 밝혔으니 헌재가 공식적으로 자살을 선언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말이 될까. 모든 재판이 그렇지만 이 사건은 대한민국 앞으로의 모습을 결정지을 탄핵재판이다. 탄핵 인용이냐 기각이냐에 따라 엄청난 후유증이 동반될 수도 있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훗날 돌아봤을 때 이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불행한 사건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고작 재판관 한 명 퇴임날짜 맞추자고 재판이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던 말든 일단 날짜를 맞추자니, 기가 찬다.
박한철 소장의 오만한 발상
박한철 소장은 구체적으로 이런 말들을 했다. "저로서는 오늘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참여하는 변론 절차이며 다른 한 분의 재판관 역시 3월 13일 임기 만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두 분 재판관이 공석으로는 탄핵심판 절차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어 그 전에 종결되고 선고돼야 한다" "헌재의 결정은 9인의 재판관으로 결정되는 재판부에서 치열한 논의를 거쳐서 도출되는 것이어서 재판관 각자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재판관 1인이 추가 공석이 되는 경우 이는 단지 한 사람의 공백을 넘어 심판결과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
이런 헌재 소장 발표에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는 국회 측이 언론에 대놓고 밝힌 '3월 선고' 발언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단지 국회뿐이 아니다. 언론이 말하는 벚꽃대선, 조기대선 주장과도 같은 이야기다. 탄핵심판 절차의 정당성을 이렇게나 강조하는 박 소장에게 한번 물어 보고 싶다. 그동안 진행된 탄핵심판은 절차적으로 과연 공정했으며 심판결과를 왜곡시키지 않은 것인가.
▲ 박한철 헌법재판소 소장이 재판관 퇴임일자 문제로 대통령 탄핵심판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가 각본대로 심리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더 공정한 심리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
국회는 기사 쪼가리 따위와 법률적 위반조차 되지 않는 온갖 것들을 집어넣은 탄핵사유서를 가지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법률위반 건수를 못 잡으니 탄핵사유서를 재작성 하겠다고 한다. 이런 국회를 도와 언론이 허위보도와 인민재판으로 여론을 왜곡시키고 있다. 검찰과 특검은 그 여론에 올라타 칼춤을 추고 있다.
이런 총체적인 왜곡과 외부 압박에 눌려 특정 시점을 목표로 달려가는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는 왜곡된 결론이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나. 재판관 한 명 한 명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말에 동의 못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재판관들 일부가 지금까지 변론에서 보이는 심각한 편파성에 대해선 박 소장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지금까지 헌재가 보인 불공정은 무시하고 재판관 한 명의 임기가 끝난다고 무조건 그 스케줄에 맞춰 끝내자는 주장이야말로 헌재의 오만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닌가.
진정한 헌법적 비상상황이란
박 소장의 주장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린 관료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을 무조건 탄핵시키자는 목적으로 과정을 들러리 삼는 게 아니지 않은가. 임기가 끝나는 헌법재판관은 황교안 권한대행이 임명하면 된다. 황 권한대행에게는 그런 헌법적 권한이 있다. 헌재가 헌법재판관 구성이라는 형식 요건에 매달려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날짜까지 정해 그때까지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으니 헌재가 결론을 내려놓고 있다는 국민적 오해를 받고 있는 것 아닌가. 특히나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재가 국회 측 의견을 그대로 말한 것이라면 심판 절차에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어 중대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렇게 한 쪽의 극심한 반발을 사는데 헌법재판관 머릿수만 맞춘다고 해서 정당성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헌재의 탄핵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심판결과가 왜곡되는 것은 재판관들 숫자 때문이 아니다. 일부 재판관처럼 한쪽 여론만 의식하는 편파진행이 왜곡시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앞으로 헌재소장, 재판관 공석이라는 헌법적 비상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향후 헌법 개정 등 입법적 조치가 반드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헌법적 비상 상황은 임기 만료로 인해 재판관 공백상태가 되어서가 아니라, 헌재가 탄핵심판을 반헌법적이고 반법률적으로 함으로써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이제 전원사퇴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탄핵심판 당사자는 반드시 대리인을 선임해야 하는데, 만일 전원사퇴 한다면 새로 다시 선임해야 하기 때문에 헌재결정은 당연히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박 소장은 공정한 심판을 말해야 하지 재판관 임기 때문에 무조건 빨리 끝내야 한다는 식의 말을 해선 곤란하다. 대통령 탄핵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문제가 아니다. 헌재가 각본대로 심리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더 공정한 심리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박한명 미디어펜 논설주간
[박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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