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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품에 안았던 그의 죽음에 같은 세대가 눈물을 보낸다 본문
태극기 품에 안았던 그의 죽음에 같은 세대가 눈물을 보낸다
증오와 회한과 미련을 내려놓고 편히 쉬시라!
그러나 ‘태극기의 물결’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 이부 2booeve@gmail.com
- 등록 2017.01.31 02:22:11
李 斧
+ 조OO, 1955년 생(61세)
+ 서울 노원구 하계동 아파트 6층에서 투신자살
+ “탄핵 가결 헌재 무효” 구호가 적힌 손태극기 2개
엊그제 설날 밤에 벌어진 일이다. 그날도 낮에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태극기 집회’가 있었다. 그 시간 때에 고인(故人)은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고 한 석간신문이 보도했다.
‘태극기 집회’ 참여 문제로 가족[특히 자식들]과 언쟁(言爭)을 벌였고,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투신자살’(投身自殺)을 택했다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자신의 신념을 가족들이 몰라줬거나 또는 일방적으로 매도(罵倒)하는데 대한 섭섭함과 울분이 합쳐져 극단의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는 거다.
고인이 ‘태극기 집회’에 매번 참가했고, 자원봉사활동까지 해 왔다는 주변의 증언(證言)을 듣고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더군다나 같은 세대의 입장에서는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대목이다.
고인이 성년(成年)이 될 즈음 이 나라 국민들은 ‘유신’(維新)의 서릿발인 ‘긴급조치’와 마주하고 살았다. 단지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젊은이들의 수많은 노래들이 애매모호한 이유로 ‘금지곡’이란 딱지가 붙여졌다.
또 한편으로는 이 나라 군대가 자유를 지키러 떠났던 ‘월남’(越南)이 공산화되는 걸 듣고 보았다. ‘보트 피플’이라는 생소한 영어(英語) 단어의 실상도 접할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 양면(兩面)의 현실을 저주(咀呪)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막연히 ‘민주화’를 바라면서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리고는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다.
성년(成年) 즈음에 그 엄혹한 시절을 살았던 고인은 왜 ‘태극기 집회’에 개근(皆勤)을 했을까? ‘유신(維新)의 딸’이라고 그의 아들 세대가 비난·폄하하는 대통령이지만, 고인은 왜 그 대통령이 탄핵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외쳤던가? 그는 그 시절에 그렇게 바라던 ‘민주화’를 지금까지도 짖어대는 무리들에게 왜 맞섰던 것일까? 그리고 왜 목숨까지 버릴 결심을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직접 영욕(榮辱)의 ‘조국 대한민국’을 살았고, 체험(體驗)으로 그들의‘민주화’가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경험(經驗)에 의해 학습되지 않은 되바라진 자식 세대들이 너무도 한심스럽고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미웠을 것이 확실하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만든 몇몇 놈들을 규탄하다가도 “아냐, 내 잘못이 더 크지...”하며 커다란 회한(悔恨)을 품었을 듯도 싶다.
우리가 극단(極端)의 선택에 한없이 탄식하면서도, 그 심오한 유지(遺志)를 받들겠다고 하는 이유다. 그런데...
보도에 따르면, 경찰 관계자는 “탄기국[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 활동 때문에 가족과 불화가 있었다는 내용을 포함해 유족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면서 의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단다. 참으로 일개 국민의 목숨을 너무도 쉽게 여기는 건 아닌지 울컥 분노가 치민다.
(조인환 애국 지사 아들의 카톡 프로필이다. 조인환씨 죽음의 원인을 가늠하게 한다)
더군다나 고인이 투신에 이르게 된 동기와 경위에 대한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그 아들의 ‘특정 단체’ 가담까지 거론되고 있는 실정임을 감안하면, 경찰은 철저히 수사하여 그 결과를 공개해야 마땅하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유족(遺族)들께는 간곡히 부탁하고자 한다. 가장(家長)을 잃은 슬픔이 이루 형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심심한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또한 여러 정황에 비추어, 다소 민감한 사안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생전 바램을 한 번쯤 곱씹는 것도 자식의 도리(道理)'가 아니겠는가. 때문에 고인(故人)의 유지를 받들고 명복을 빌겠다는 ‘태극기 집회’ 동지(同志)들의 순수한 제의마저 거절하면서 조문(弔問)을 불허했던 처사는 납득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감히 지적한다. 더욱이 “아버지의 죽음은 ‘탄기국’ 때문이었다”고 항변했다는 설마저 유포되고 있단다.
사정이 이러하니, “불효 막심”이라는 비난과 함께, ‘특정 단체’의 압력과 회유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오해까지 대두되고 있다는 사실도 직시하기 바란다.
다행스럽게도 고인을 떠들썩하게 미화(美化)하거나 그 무슨 ‘영웅’(英雄)으로 만들려 하지 않고, 차분하게 추모하면서 투쟁 의지를 다지겠다는 움직임이 돋보인다.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차렸고, 많은 애국 국민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더 이상의 희생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 집회’의 열정은 결코 식지 않을 것이다. 더욱 뜨거워질 게 확실하다. 그가 지핀 불이 거세게 타오를 것이다.
(시청앞 연평 해전 용사와 천안함 전사들과 함께 한 조인환 애국 지사의 위패)
엄혹한 그 시절을 함께 살았던 같은 세대의 아직도 청춘인 한 필부(匹夫)가 그의 영전(靈前)에 머리 숙이며 눈물을 떨군다.
“너무도 잘 알고 있다네.
당신의 뜨거운 가슴이 무얼 말하려 했는지...
증오와 회한과 미련, 이 모든 걸 내려놓고 편히 쉬시게나!”
李 斧 <本報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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