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
택시운전사, 힌츠페터 그리고 김사복 본문
It was the pro-Pyeongyang federation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who made an arrangement for Jurgen Hinzpeter 's visit to Gwangju during the Gwangju Uprising.
KBS가 ‘푸른눈의 목격자’라고 부른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는 조총련이 일본에서 광주로 보냈다. ‘푸른눈의 목격자’ 대본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나는 그냥 라디오를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프레스 클럽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했는데 그곳에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나는 한국에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 있는 조사원과 연결이 되었다.”
여기서 한국에 있는 조사원은 미리 광주로 잠입하여 광주운동권 및 북괴와 더불어 광주사태 공작을 하고 있었던 조총련 산하단체 한민통 요원 김사복을 지칭한다. 대본은 이어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바로 도쿄 나리타 공항으로 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다음날 새벽에 우리는 광주로 향했다.
바로 광주로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어 서울에서 하루를 보냈던 것이다. 광주로 가는 고속도로는 텅비어있었다. 기이한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계엄령이 내려져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이라해도 광주까지 가는 것은 무척 위험한 상황이었다. 곧 돌아올 수 있을 지도 불확실 했다.
서울을 떠나 고속도로로 가는 길에 미리 저지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고속도로에는 차량들이 전혀 없었고 광주 70km 정도까지 달리는 차는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군대에 의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들은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인 운전기사 김사복이 샛길을 찾아냈다. 논 사이로 나있는 길을 달려 작은 마을을 하나 지났다.>>
이 대본 중 첫째 단락이 힌츠페터의 영문 수기에는 훨씬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김사복은 단순 운전기사가 아니었다. 통상 해외여행을 하려면 적어도 며칠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영어에 능통한 김사복이 모든 준비를 해놓고 있다가 김포공항으로 그를 마중 나왔으며, 조선호텔에서 5월 19일 같이 묵었다.
힌츠페터의 수기 중 “our driver Kim Sa Bok”은 정직한 표현이 아니다. 그의 운전기사 김사복이 어느 조직의 요원이었으며, 왜 그렇게 광주지리에 밝았으며, 왜 조선호텔과 관광호텔에서 함깨 며칠간 묵었는지, 일본 국적의 김사복이 한국에서 하는 활동이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밝힐 책임이 그에게 있었을 것이다.
===
힌츠페터는 5월 19일 들은 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 유언비어를 맹신하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 유언비어는 그 어떤 뉴스에도 보도된 적이 없었는데 힌츠페터가 일본에서 어떻게 그 유언비어를 들었는가? 그 유언비어는 그 유언비어를 지어내 퍼뜨린 한민통 조직만 알 수 있는 유언비어였다. 힌츠페터는 처음부터 한민통이 지어낸 유언비어에 오염되어 있었다.
KBS가 ‘푸른눈의 목격자’라고 부른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는 조총련이 일본에서 광주로 보냈다. ‘푸른눈의 목격자’ 대본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나는 그냥 라디오를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프레스 클럽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했는데 그곳에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나는 한국에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 있는 조사원과 연결이 되었다.”
여기서 일본 조직과 연계되어 한국에 파견된 조사원이란 한민통 요원을 지칭하며, 이 자가 영화 '택시 운전수'의 주인공 김사복이다. 2013년 KBS가 ‘푸른눈의 목격자’를 방영하였을 때 그 수기 원본에는 김사복이 "한국에 있는 조사원"임이 명시되어 있는데, 지난 2000년 김대중 노벨 평화상 공작용으로 출간된 첵에 수록된 힌츠페터 수기에는 그런 말이 빠져 있고 김사복이 김포공항으로 자기를 마중나왔으며, 조선호탤로 가는 도중에 광주사태 상황을 말해 주었다는 설명만 나온다. 광주사태 기간 내내 김사복은 힌츠페터와 같은 호텔에서 동숙하였다.
Outside, our driver Kim Sa Bok was waiting for us. We greeted each other, then sped off toward the Chosun Hotel in downtown Seoul. As we drove, Kim briefed us on the situation. It was too late to set out for Kwangju-several hundred kilometers to the south. We stayed the night at the hotel in Seoul.
영어와 독어에 능숙하며 5.18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에게도 광주사태를 영어나 독어로 외국인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광주사태가 일어날 것을 아직 아무도 몰랐던 때에 어떻게 일개 택시운전사가 광주사태 상황을 영어 혹은 독어로 힌츠페터에게 설명해 줄 수 있었는가? 이 사람은 국재적으로 광주사태 프로파간다를 하기 위해 준비되었던 인물이요, 그래서 미리 기획되어 있었던 광주사태 주요 현장으로 힌츠페터를 데리고 다녔던 것이다.
(김대령 교수 페북에서)
KBS가 ‘푸른눈의 목격자’라고 부른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는 조총련이 일본에서 광주로 보냈다. ‘푸른눈의 목격자’ 대본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나는 그냥 라디오를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프레스 클럽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했는데 그곳에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나는 한국에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 있는 조사원과 연결이 되었다.”
여기서 한국에 있는 조사원은 미리 광주로 잠입하여 광주운동권 및 북괴와 더불어 광주사태 공작을 하고 있었던 조총련 산하단체 한민통 요원 김사복을 지칭한다. 대본은 이어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바로 도쿄 나리타 공항으로 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다음날 새벽에 우리는 광주로 향했다.
바로 광주로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어 서울에서 하루를 보냈던 것이다. 광주로 가는 고속도로는 텅비어있었다. 기이한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계엄령이 내려져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이라해도 광주까지 가는 것은 무척 위험한 상황이었다. 곧 돌아올 수 있을 지도 불확실 했다.
서울을 떠나 고속도로로 가는 길에 미리 저지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고속도로에는 차량들이 전혀 없었고 광주 70km 정도까지 달리는 차는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군대에 의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그들은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인 운전기사 김사복이 샛길을 찾아냈다. 논 사이로 나있는 길을 달려 작은 마을을 하나 지났다.>>
이 대본 중 첫째 단락이 힌츠페터의 영문 수기에는 훨씬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김사복은 단순 운전기사가 아니었다. 통상 해외여행을 하려면 적어도 며칠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영어에 능통한 김사복이 모든 준비를 해놓고 있다가 김포공항으로 그를 마중 나왔으며, 조선호텔에서 5월 19일 같이 묵었다.
힌츠페터의 수기 중 “our driver Kim Sa Bok”은 정직한 표현이 아니다. 그의 운전기사 김사복이 어느 조직의 요원이었으며, 왜 그렇게 광주지리에 밝았으며, 왜 조선호텔과 관광호텔에서 함깨 며칠간 묵었는지, 일본 국적의 김사복이 한국에서 하는 활동이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밝힐 책임이 그에게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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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츠페터는 5월 19일 들은 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 유언비어를 맹신하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 유언비어는 그 어떤 뉴스에도 보도된 적이 없었는데 힌츠페터가 일본에서 어떻게 그 유언비어를 들었는가? 그 유언비어는 그 유언비어를 지어내 퍼뜨린 한민통 조직만 알 수 있는 유언비어였다. 힌츠페터는 처음부터 한민통이 지어낸 유언비어에 오염되어 있었다.
KBS가 ‘푸른눈의 목격자’라고 부른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는 조총련이 일본에서 광주로 보냈다. ‘푸른눈의 목격자’ 대본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나는 그냥 라디오를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프레스 클럽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했는데 그곳에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나는 한국에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 있는 조사원과 연결이 되었다.”
여기서 일본 조직과 연계되어 한국에 파견된 조사원이란 한민통 요원을 지칭하며, 이 자가 영화 '택시 운전수'의 주인공 김사복이다. 2013년 KBS가 ‘푸른눈의 목격자’를 방영하였을 때 그 수기 원본에는 김사복이 "한국에 있는 조사원"임이 명시되어 있는데, 지난 2000년 김대중 노벨 평화상 공작용으로 출간된 첵에 수록된 힌츠페터 수기에는 그런 말이 빠져 있고 김사복이 김포공항으로 자기를 마중나왔으며, 조선호탤로 가는 도중에 광주사태 상황을 말해 주었다는 설명만 나온다. 광주사태 기간 내내 김사복은 힌츠페터와 같은 호텔에서 동숙하였다.
Outside, our driver Kim Sa Bok was waiting for us. We greeted each other, then sped off toward the Chosun Hotel in downtown Seoul. As we drove, Kim briefed us on the situation. It was too late to set out for Kwangju-several hundred kilometers to the south. We stayed the night at the hotel in Seoul.
영어와 독어에 능숙하며 5.18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에게도 광주사태를 영어나 독어로 외국인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광주사태가 일어날 것을 아직 아무도 몰랐던 때에 어떻게 일개 택시운전사가 광주사태 상황을 영어 혹은 독어로 힌츠페터에게 설명해 줄 수 있었는가? 이 사람은 국재적으로 광주사태 프로파간다를 하기 위해 준비되었던 인물이요, 그래서 미리 기획되어 있었던 광주사태 주요 현장으로 힌츠페터를 데리고 다녔던 것이다.
(김대령 교수 페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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