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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대한민국

북한 주민들은 왜 침묵과 복종을 하는가

j.and.h 2017. 11. 22. 11:43


이애란 (2013-11-21, 굿소사이어티 기고문)
 
북한 주민들은 왜 침묵과 복종을 하는가

- 그들은 세뇌된 게 아니고 공포통치의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

이애란 <(사)하나여성회 대표>

 
필자는 탈북여성 국내 박사 1호’로 유명하며 탈북자 여성단체 모임인 (사)하나여성회 대표도 맡고 있다. 탈북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인사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그는 2010년 미 국무부가 수여한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등을 받았다. 저서로 <평양 식객>, <사람 참 안 죽더라> 등을 펴냈다.

한국에 와서 생활하지 16년이 지났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질문을 받았고 북한에 대한 많은 견해와 이론들을 접했고 나름대로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학자들이 지금도 북한의 주체사상 허구적 성격을 연구하고 있지만, 1980년대 이후 한동안 주체사상은 정의감에 불타는 남한의 청년학생들을 매료시켜 주사파라고 하는 이념적으로 불행한 특정집단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회고해 보면 북한에 있을 때 주체사상 공부는 필수였고 인민학교부터 대학 전 기간 동안 중요한 학습과제로 선정되어 늘 밑줄을 쳐가며 공부했다. 늘 토씨 한 글자도 틀림없이 외워야 했고, 늘 생활의 모든 갈피마다 인용하면 지침서로 활용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실제로 생활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이제야 고백한다.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기에 습관적으로 행동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침묵하는 북한주민들의 공포증후군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즉 공포의 분위기 때문에 억지로 해본 것 일뿐이다. 북한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북한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삶에 대한 구체적인 성찰을 해본 적도 없고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도 지식도 부족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은 어느 정도 하긴 했었지만,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깨달을 정도로 유식하지도, 여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16년간의 남한생활을 통해 북한에서의 삶에 대해 깨달았다고 하면 너무 이상한 것일까? 하지만 사실이다. 이제는 알 것 같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남한의 학자와 전문가들은 북한주민들이 주체사상에 세뇌되어 그렇게 산다고 말하지만, 내가 체험한 데 따르면 북한주민들은 주체사상에 세뇌되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세습독재정권을 찬양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들에게 수 십 년 동안 전수되고 학습되어 온 공포 증후군으로 인한 두려움이 우선이다. 그것 때문에 마치 세뇌된 것처럼 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김일성이 만들어내고 김정일이 발전시켜 김정은에게 넘겨준 북한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5천년 한민족의 역사 어느 때에도 찾아볼 수 없는 살인지옥이자, 공포의 도가니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최근 뉴스를 통해 우리는 북한에서 한국의 TV 드라마를 보았다는 이유 때문에 80명을 기관총으로 공개처형했다는 천인공노할 소식을 접해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반신반의를 하지만, 개연성이 100%라고 나는 믿는다. 듣기만 해도 끔직한 살인의 행진을 북한은 과연 언제쯤이면 끝낼 것인가?

1994년 천년 만년 살 것 같았던 김일성이 사망하자 북한사회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경제는 더욱 어려워 졌고 전국 도처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는데, 그걸 나는 내 눈으로 지켜봤다. 국가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시체가 쌓여있어도 뉴스는 물론이고 어떤 매체를 통해서도 이런 최악의 불상사들에 대해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알려주지 않았다. 때문에 유언비어에 의해서만 국가의 상황을 대충 이해할 수 있었기에 어쩌면 유언비어는 더욱 부풀려져서 사람들의 불안감은 극도에 달했다.

영원할 것 같던 김일성 사망 뒤 펼쳐진 생지옥 북한

기본적인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생계형범죄 또한 증가하였고 내가 살았던 혜산에서도 인구가 23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온갖, 살인, 사기, 강도, 절도, 등 강력범죄가 빈발했던 무법천지였다. 저녁 늦게 길거리에 혼자 다니는 것을 자제해야 했고 특히 보통사람들보다 좀 크거나 무거운 짐 보따리를 들고 다니거나 옷차림이 깨끗해서 돈깨나 있어 보이는 차림새로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당장 칼침을 맞기에 적당한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만일 옷차림이 화려하거나 짐보따리가 크면 물론 강도들의 타격 목표가 되기도 하지만 안전원들도 아무런 영장도 없이 불러다가 짐을 들추어보고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압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만들던 시절이었다. 국가의 배급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에서 장사라도 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살 수 없었고 장사라도 하려면 밑천이 있어야 하는데 국가에서 주는 것만큼만, 그것도 늘 모자라서 꾸어먹고 얻어먹으며 살아왔던 극빈층들은 그야말로 의지할 것이 없어 도둑질을 하거나 강도질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장마당에는 여러 가지 장사꾼들이 있었는데 사실 가장 가난한 장사꾼들은 기름튀기나 떡, 두부밥, 만두, 국수, 죽 같은 것을 파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은 산에 가서 나무를 끌어다 팔거나 탄광에 가서 탄을 주어다 파는 사람들이었고 그것도 안 되는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쓰던 그릇이나 이불천, 이불솜 등을 파는 사람들이었으며 그것조차도 어려운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거나 대놓고 빼앗곤 했다.

장마당에서 먹을 것을 사서 먹을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새 꽃제비들이 와서 손목을 쳐서 음식을 땅에 떨어뜨리게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전원과 노동자규찰대, 검찰소 검사, 시장관리원 등 다양한 완장을 찬 검열원들이 돌아다니며 물건을 빼앗거나 하기 때문에 정말 눈이 돌아가는 순간속도가 빠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국가적인 폭력은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더욱 강화되었고 특히 김정일은 1995년 9월에 듣기만 해도 살인적인 광기가 넘치는 지시를 내렸다.

김정일이 “이젠 공화국에서 총소리를 낼 때가 되었습니다.”하면서 각 도에서 20명정도의 범죄자들을 시범으로 공개처형하라는 지시였던 것이다. 현장에서 절도하다 들키면 무조건 총살, 전과 3범 이상은 무조건 총살, 등 공개처형의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내가 살았던 도시에서도 12명이 공개처형 되었다. 그 중에 두부 30모를 훔쳐 먹고 총살당한 의학대학 학생도 있었던 것을 나는 엊그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다. 공포의 일상화가 그렇게 강화됐다.

식량난이 시작되면서 가장 고통을 받았던 계층중의 하나는 대학 기숙사생들이었다. 북한의 대학 기숙사는 건물이 매우 낡고 더러워서 수용소 같고 식사조건도 말이 아니다. 어려운 기숙사생활에 견디다 못해 동네 두부집을 털어 두부 30모를 훔쳐 먹은 20살의 대학생은 12명의 북한주민들과 함께 공개처형을 당했다. 당시 북한의 여러 대도시에서는 김정일의 지시로 사람들이 대거 공개처형을 당했고 북한주민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내 눈으로 직접 본 끔찍한 공개처형만도 네 차례

국가인권위원회가 탈북자들을 상대로 조사 한 결과 북한에서 굶어 죽는 사람을 직접 보았다는 증언은 64%, 공개처형장면을 직접 보았다는 증언은 75%에 달해 인간생지옥 북한의 면모를 숫자로 보여주고 있다. 94년부터 1997년 8월까지 내가 직접 본 공개처형은 4번이나 되었고 다른 지역에서 진행되었다는 공개처형소식은 10 차례가 넘었다. 이러한 지속적인 공개처형과 살인적인 수감생활들, 가차없는 추방령과 생존권 위협 등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선 전혀 관심 없고 오직 통제를 위함 폭압만이 난무했다.

외부의 경험에 대한 일말의 지식이나 정보도 없이 폐쇄되고 은폐된 곳에서 태어나서부터 경험하는 지독한 폭력과 압제, 선대로부터 물려받고 전수되는 공포들은 북한주민들을 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도 반항 한마디 못하고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죽음만을 기다리는 노예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증후군은 자유로운 대한민국에 와서조차 아주 오랫동안 남아서 탈북자들의 남한사회 정착에 어려움을 조성하고 있다.

자유는 책임을 전제로 하고 책임감은 자존감을 필요로 하는데 한번도 자유를 누려보지 못하고 인권을 보장받아보지 못한 북한주민들에게는 여전히 공포증후군으로 인한 두려움이 남아있고 이 두려움은 자존감을 상실케 하여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다가 대한민국의 정부와 공무원들은 탈북자들을 이 땅의 국민으로 받아들이고 나서도 여전히 믿지 못하고 인정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 공포증후군의 두려움은 치유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북한 이탈주민들의 정착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프로세스가 비효율적인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한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리고 북한주민들도 마찬가지로 주체사상 그 자체보다는 주체사상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공개처형과 듣기만 해도 섬찟한 3대 멸족(滅族) 등의 모든 폭력과 압제를 제거해야만 북한주민들이 자유를 외칠 수 있고 민주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은과 그 세력만 제거하면 북한사회엔 자유가 숨쉴 것

오늘의 북한이 공포 증후군으로 체제 유지를 하고 있다는 인식은 여러 가지로 매우 중요하다. 우선 김정은 체제가 몰락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북한 체제 유지의 동력이 남아있거나, 의미 있는 잠재력 따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북한 주민들이 꼼짝 못하고 있는 것은 김정은의 리더십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때문에 체제 폭력, 국가 폭력이 전방위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물리적, 정신적 테러만 제거해준다면, 폭압에 신음하는 북한동포들을 해방시키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는 자신감도 얻을 수 있다.

공포 증후군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으면 '통일 그 이후'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결에도 많은 암시를 받을 수 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통일비용을 말하고, 통일 이후 남북한 사회통합이 과연 가능하겠는가를 걱정하지만, 이게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즉 평양의 독재자와 협력자 계층만 깨끗하게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 통합을 이룰 수 있다.

또 하나 공포 증후군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남북대화, 남북교류 문제에 대한 접근에 훌륭한 통찰을 얻어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끊임없이 남북대화, 남북교류 문제가 등장하고, 민족화해와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도 등장하지만, 그게 상당 부분 허깨비 노름일 수 있다. 공포증후군을 만들어내는 주범인 김정은 집단을 명분 좋은 대화 상대로 여기고, 북한주민들에게 다가가겠다는 것은 어쩌면 눈감고 “야옹”하는 화려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여러 가지로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대한민국은 그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조언을 드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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