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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세이(Copy+Essay)

그들은 왜 상해임정에 집착하는가?

j.and.h 2017. 12. 30. 19:02

 

장면 1.

"동해야"
김구 선생은 웃음을 멈추고 내게 말했다. "당초 나는 너를 공산주의자로 알고 너를 대한애국단에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더욱이 네가 여성이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보니 내가 받아들인 게 옳았다. 본디 너는 대단한 호걸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우리 역사에 걸출한 한 명의 여걸이 추가될 것 같다.!"
"공산주의가 뭐가 나쁜가요?"
나는 반농담식으로 발했다.
"저는 바로 조선공산당원입니다. 저는 조선공산당에서 상하이에 가서 지하활동을 하라고 파견했습니다.. 두 분께서는 아직 모르고 계셨나요? 사실 동산당도 나라를 사랑합니다. 중국공산당에도 '개잡이대(打狗隊)'가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모두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아, 네가 여성 공산당원이었니? 언제 가입했는데?"
윤봉길은 눈을 크게 뜨고 매우 놀란 듯 내게 물었다.
"동해는 애국주의자다. 내가 동해를 관찰해봤다. 사실 공산당도 항일조직이다."
이어서 김구 선생은 엄숙하게 말했다.
"너희 둘이 부부로 위장하되 절대 노출시키면 안 된다. 안 그러면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그건 전적으로 동해한테 달렸습니다."
윤봉길은 나를 가리키며 김구 선생에게 말했다.

이상은 "이화림 회고록"에 나오는 내용으로, 여기서 동해는 이화림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 회고록에 의하면 제1차 상하이 사변(1932년 1월 28일 1.28사변)과 같은 해 4월29일 천장절(히로히또 생일 기념일) 사이에 있었던 일화로 추정된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김구는 조선공산당원을 임시정부에서 받아들인 것이 확인된다. 다만, 그 수는 얼마나 될지 아직까지 알 수는 없다.

 

장면 2.

이승만은 입국비자가 없었기 때문에 시체운반선으로 밀항하여 1920년 10월 5일 도착했다. 1921년 1월 1일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공식업무가 시작되었다. 이 날의 첫 국무회의는 국무총리 이동휘의 파란으로 진행되었다. 임정의 운영을 대통령제에서 위원제로 하고, 항일 무장투쟁에 들어가야 하며 소련과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승만은 소규모 무장부대의 국내진입은 대대적인 일제의 보복을 불러 동포들의 피해만 커질 것이고, 소련과의 협력은 공산주의 국가의 노예를 만들자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로 이동휘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다른 국무위원들까지 자신의 제안을 외면하자 이동휘는 국무총리직을 사퇴했다. 이동휘의 사퇴에 이어 학무총장 김규식, 군무총장 노백린, 교통총장 남형우, 노동국 총관 안창호도 사퇴했다.

(오인환 저, 이승만의 삶과 국가)

 

이상으로부터 지금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아닌 상해임정을 지지하고, 김구를 지지하는 세력들의 속내가 무엇이며,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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